A Garden of Architectural Ornament: The Assembled Sculptures of Byoungho KIM

Category  
Publisher
Writer
Year




Essay
Public Art (Issue No. 230)
Wonhwa Yoon
2025



Byoungho KIM’s sculptural works emerge like an indigenous species of the artificial environment that has become our second nature. His practice, which leverages industrial materials and technologies, reflects reality in a manner distinct from mere mimesis; it does not simply copy the world’s appearance but applies the very principles by which it is constructed and maintained. These geometric assemblages―built from factory-commissioned tubes and club-shaped components―thus diverge from pure abstraction. While rigorously geometric, their forms are deliberately referential: polished surfaces and stamen-like shapes evoke magnified botanical jewelry. They feel entirely at home in the urban landscape, as if a mineral fungus had sprouted in an ecosystem of metal and glass. Yet this organic appearance is a meticulously planned and fabricated illusion―a kind of visual special effect. The artist likens his process to gardening. A garden, after all, is a construct―an artifact reconfigured to conform to humanity’s idealized image of nature. Though often relegated to the status of ancillary architectural decoration, the garden embodies a peculiar translational process: nature becomes ornament, and ornament in turn becomes place. In some sense, our entire urban matrix now exists as one vast, all-encompassing garden. If everything about life and art is already a part of this constructed garden, then what possibly can an artist do within it? Kim’s response is a recursive one: to act as a secondary creator, seeding this ground with his own gardens.

김병호의 조각적 작업은 우리의 두 번째 자연이 된 인공 환경의 토착종처럼 나타난다. 산업 재료와 기술을 활용하여 현재의 세계가 구축, 유지되는 원리를 예술 창작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그냥 외양을 본뜨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반영한다. 공장에서 주문 제작한 튜브와 곤봉 모양의 부품들을 조립한 기하학적 집합체는 순수 추상과 다르다. 꽃술 같은 형태와 매끈하게 마감된 표면은 식물을 모티프로 한 장신구를 확대한 것처럼 보이고, 도시 풍경 속에 놓여도 크게 이물감이 없다. 금속과 유리의 생태계에서 광물성의 곰팡이 같은 것이 자라난다면 그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외양은 정교하게 계획되고 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시각적 특수 효과에 가깝다. 작가는 이를 정원 만들기에 비유한다. 정원은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에 부합하도록 자연물을 변형하고 재조합한 인공물이다. 흔히 건물의 부수적 장식으로 취급되지만, 정원은 자연이 장식이 되고 그 장식이 다시 장소가 되는 독특한 전환 과정을 함축한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존재한다. 삶과 예술을 포함한 모든 것이 이미 언제나 정원의 일부라면 예술가는 뭘 할 수 있을까? 그의 답변은, 정원 속에 다시 정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      
Garden in the Garden
Kim’s initial Garden series focused on certain autonomous principles of formation, administered artificially, ostensibly behind the facade of nature. Garden (2013) is a forest of slanted, parallel aluminum pipes, identically sized, but with varied colors. The bright colors and polished surfaces running from ceiling to the floor might feel related to public park amenities or playground equipment. To others, its dense arrangement might evoke architectural bird spikes scaled to human size. Each rod is secured flat against the ceiling but tapers to a fine conical point on the floor. The resulting installation occupies a curious affective space: it forms a self- contained whole with a cheerfully indifferent attitude, neither explicitly hostile―nor hospitable―to the viewer. Neither does it assert its presence with the transcendental aloofness typical of an artwork, precisely because its standardized components can be reconfigured at whim. In this, Garden functions as a metonym for the contemporary world: a modular system, easily expanded and transformed. It is a pleasant and convenient order in which objects, spaces, and even human beings become flexibly protean.

Here, the garden is presented as a microcosm―both a constituent element of our urban environment and a compressed illustration of its internal logic. It is not a stage for human action, nor a place for dwelling, but merely an aestheticized landscape that gestures toward nature. As such, it fails to provide a stable ground upon which human existence can be anchored. The exhibition intimates the presence of some individual who dreams, doubts, remembers, and weeps, but in this gardened world, their place is entirely absent. And Kim does not resort to the age-old critique of how modern civilization, built for humanity, paradoxically alienates it.


정원 속의 정원
첫 번째 정원 작업은 겉보기에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 자연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어떤 자율적 조형 원리에 초점을 맞췄다. <정원>(2013)은 동일 크기의 채색 알루미늄 파이프를 연결한 금속봉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빗줄기처럼 비스듬히 늘어서 있는 설치 작업이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매끈한 질감은 놀이터나 공원의 기물을 연상시키고, 끝이 뾰족한 직선형 구조물이 빽빽하게 밀집한 대형은 비둘기가 앉지 못하게 하는 ‘버드 스파이크(bird spike)’를 휴먼 스케일로 키워 놓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명확하게 관객을 적대하거나 환대하기보다 다소 무관심하게 명랑한 태도로 자족적인 전체를 형성한다. 그렇다고 여느 예술 작품처럼 초연하게 자신의 현존을 주장하진 않는데, 왜냐하면 규격화된 부품들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재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은 무엇보다도 확장과 변형이 용이한 모듈 시스템으로서 동시대 세계의 환유로 기능한다. 사물과 공간, 더 나아가 인간조차 유연하게 다변화되는 쾌적하고 편리한 질서가 있다. 그 속에서 개인의 삶은 무엇이 되는가 하는 것이 정원 작업을 처음 선보인 개인전 <정원 속의 정원>(2013,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의 질문이었다.


여기서 정원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환경의 구성요소이자 그 내적 논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소우주로 제시된다. 그것은 거주를 위한 장소나 행동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그저 자연을 표방하는 미화된 경관으로, 인간의 실존을 의탁할 수 있는 안정된 지지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시는 꿈꾸고 의심하고 기억을 간직하고 눈물 흘리는 어떤 개인의 존재를 암시하지만, 정원이 된 세계에서 그의 자리는 부재한다. 이에 대하여 작가는 인간을 위해 건설된 현대 문명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오래된 비판을 반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원이 된다면 우리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우리도 정원의 구성요소라면, <정원>은 우리를 억압하는 아름다운 감옥이 아니라 스펙터클의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의 이상화된 자아상,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가 말한 ‘대중 장식(mass ornament)’의 최신 버전이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추상화, 사물화되는 것을 넘어 질서정연하고 다채롭고 유능하고 미적으로 만족스러운 세상의 일부가 된다. 물론 그것은 환상이지만,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했다는 최초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환상이다. 현실이 실제로 그와 같지 못하다면 더욱 그렇다.

정원의 미적 이념은 역사적인 것과 신화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과 바람직한 것의 마법 같은 통합을 약속한다. ‘수직정원’ 연작(2017-)은 이 같은 꿈세계의 개념적 모형을 제시하는데, 여기서 <정원>의 규칙적인 직선 구조는 하나의 축으로 환원되어 작가가 “문명의 혹”, “욕망의 덩어리”라고 부르는 반짝이는 타원구들로 뒤덮인다.  표면이 부풀어올라 부피를 획득한 듯한 이 멍울들은 제각기 작은 정원으로서 하나의 큰 정원을 이룬다. 이를 프랙탈 구조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부분과 전체, 내부와 외부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표면들이 서로를 반영하고 반복하는 그 증식의 구조다. 시각성의 혹들은 <수평정원>(2018)과 <수평정원의 그림자>(2019)에서 더욱 크고 화려하고 무질서하고 육중하게 자라난다. 그것들은 순수한 광채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무거워 보여서 약간 불안할 지경이다. 작가는 그 모순적인 덩어리들을 확대, 축소, 재배치하고 단면을 잘라 보면서 자기만의 정원 연구를 이어 나갔다. 최근 개인전 <탐닉의 정원>(2024,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스펙터클에 대한 손쉬운 비판에 만족하기보다 의심과 매혹 사이에서 방황하는 편을 택한 작가의 지난 여정을 개괄한다. 수동적인 관객보다는 자신의 연구 대상에 사로잡힌 연구자의 태도로, 그는 정원을 그 내부에서 관조하고 전유하기 위한 변형의 방법들을 모색한다.


The Latent Potential of Ornament
For everything to become a garden ultimately means for an aestheticized world to become naturalized. Rather than delineating and defending a distinct territory for art, Kim accepts this fantastical, artificial nature as the initial condition for his creative practice. Consequently, his works exhibit a compelling duality: inside the controlled environment of the white cube, they appear as discrete objects of inquiry, like the results of a scientific experiment; outside the gallery, they dissolve back into the urban matrix, becoming yet another appended aesthetic object or architectural ornament.


장식적인 것의 잠재력
모든 것이 정원이 된다는 것은 결국 미학화된 세계가 자연화된다는 뜻이다. 김병호는 그와 구별되는 예술의 영역을 방어하려 애쓰기보다 그 환상적인 인공 자연을 예술 창작의 초기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화이트 큐브의 통제된 환경에서는 실험 과학자의 연구 결과물처럼 순수한 형태로 분리되지만, 갤러리 바깥에서는 도시에 덧붙여진 또 하나의 미적 대상 또는 건축적 장식으로서 주변에 녹아든다. 초기 정원 작업에서 파생된 채색 알루미늄 파이프로 현대자동차 서비스센터를 스크린처럼 에워싼 <도심 속의 정원>(2017)은 문자 그대로 건물의 외피를 이룬다. 역사적으로 장식은 현대 디자인과 미술 양쪽에서 분과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위험 요인으로 금기시됐고, 할 포스터(Hal Foster)는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아돌프 로스(Adolf Loos)를 인용하며 ‘장식은 범죄’라고 못박는다.  반면 앙투안 피컨(Antoine Picon)은 전통 건축에서 장식이 마법과 합리성, 영원과 순간의 경계선에서 물리적 환경을 인간의 거처로 의미화했음을 강조한다. 그의 말처럼 장식이 표면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문지방을 표시”한다면, 그것은 미적 실천의 막다른 골목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전환점으로 작동할 여지가 있다.

오래된 장식에는 이성이 자연과 투쟁해온 기나긴 역사의 잔해가 거의 읽을 수 없는 상태로 침전되어서, 때로 그 불투명성 속에서 심층적 시간의 감각이 아이러니하게 깨어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꾸며지는 인공 자연으로서 동시대의 정원이 그런 이질적 장소로 경험될 수 있을까? 불탑의 관습적 형식을 모듈 시스템으로 재해석한 <매개기억>(2016)은 순천 송광사에 일 년간 설치되었다가 현재는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이다. 광을 낸 브론즈 재질의 조각은 장소 만들기에 참여하기보다 주변의 풍경을 반사하고 공기를 흡수하면서 저 자신의 외양을 변화시킨다. 그 결과는 신성한 정원과 세속의 정원 양쪽 모두에 느슨하게 연결되지만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독특한 개체다. 그것은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는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을 저해상도의 픽셀로 재구성한 것 같기도 하고,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포탄 더미처럼 보이기도 하며, 그 때문에 가짜 골동품의 아우라와는 조금 다른 이물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장식적인 것이 서로 다른 시대, 장소, 분과를 가로지르면서 동질화된 미적 지각에 균열을 낼 수 있다면, 과잉의 장엄함이나 비천함을 통해 속세를 초월하려는 움직임과는 상반되는 어떤 내재적 침식의 노선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Byoungho KI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