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조각이 움직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한 직선 운동, 회전 운동이 아니, 서로다른 유형의 여러 가지 움직임들의 속도와 진폭이 하나의 전체적인 결과를 형성하는 움직임 말이다. 색채나 형태를 구성할 수 있듯이 움직임으로도 구성할 수 있다."
- 알렉산더 칼더
"예술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부피에서, 움직임에서 그리고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구현된다."
- 알렉산더 칼더
현대조각사에서 ‘움직임’이라는 조형요소를 본격적인 핵심의제로 삼은 조각가와 조각의 형태를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와 그의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e)을 떠올릴 것이다. 글의 처음에 내가 인용한 칼더의 선언과도 같은 두 단락의 말은 칼더 조각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성에 다름 아니며, 조각 이외의 그의 회화, 보석세공, 장신구 등의 다양한 작업을 관통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움직이는 조각 ‘모빌’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는 ‘칼더의 장신구’는, 2000년 가까이 움직이지 않는 조각, 정지되어 있는 조각의 부동성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실험적 현대조각의 미학적 열망과 그 가능성을 구체화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1969, Lamiera, bulloni e pittura, 259.1x342.9x236.2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 2009 Calder Foundation, New York
따라서 이는 칼더의 모빌이 ‘움직임’으로서, 부동의 고전적 조각들이 뜨겁게 열망했던 자연 혹은 생명으로서의 부피(mass)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는 곧 공간/자연 속에서 (간헐적으로) 움직이는 ‘신체’에 대한 은유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움직이는 조각’의 계보에서 칼더의 모빌은 나움 가보(Naum Gabo, 1890-1977)의 추상적 기하성에서 시작하여 기계적 연속성이 아닌 신체의 간헐적 움직임이라는 의인적인 내용에 이르는 초기 경로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실상 모빌의 시초는 컬더가 1927년 파리에 도착한 직후 “서커스”공연을 위해 만든 작은 철사 장난감들이다. 일군의 미술가들과 음악가들이 몽파르나스의 그의 작업실로 이 서커스 공연을 보러 왔다.2) 칼더의 조각가적 열망은 그의 모빌을 통해 신체의 특성들을 묘사하면서 그 신체 움직임의 간헐적 특징을 보여 주었다면, 이른바 ‘장신구’로 분리되는 그의 작업들은, 관람자에 머물던 어떤 신체가 칼더의 장신구를 착용하면서 그 신체의 행위, 움직임에 따라 공연하는 퍼포머(performer)로서의 새로운 조각으로 확장, 변모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 1 Rosalind E. Krauss, Passages in Modern Sculpture, MIT Press,
- 1977 ; 윤난지 옮김, 『현대조각의 흐름』, 도서출판 예경, 5쇄 2009,
- 237-260쪽 참조
- 2 Rosalind E. Krauss, 윤난지 옮김, 같은 책, 256쪽
그의 열망, 휴머니티
사실, 화이트 큐브 속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과 갤러리 공간을 벗어나 누군가에게 착용되었을 장신구는 형식적 내용적 측면에서 그의 예술이 함축하고 있는 미학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앞서 살폈듯이 오히려, 그가 생명력으로 대변되는 신체의 움직임, 그 미학적 실현에 대한 조각가로서의 뜨거운 열망은 연극적 요소를 실제화 할 수 있었던 ‘장신구’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미학적 공간에서만 존재하던 오브제가 분리되어 관람객의 공간으로 침잠하더니, 작품의 관조자(beholder)였던 특정한 신체가 착용하는 순간 퍼포머(performer)가 되는 놀라운 상황은 칼더가 노골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움직임’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부피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칼더의 장신구는 미국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와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Marguerite Guggenheim, 1898-1979) 등의 진보적인 성향의 미술인들은 물론, 브룩 쉴즈(Brooke Shields, 1965-)와 안젤리카 휴스턴 (Anjelica Huston, 1951-) 등의 당대에 주목받던 영화배우 등의 셀러브리티들이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칼더 특유의 모빌을 형상화한 장신구들이나 미국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O.K」란 약자가 새겨진 브로치는 칼더의 장신구가 지닌 예술적 감각을 확인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누이의 인형 장신구를 만들면서 제작하기 시작한 그의 장신구는 자연스럽게 유연한 곡선과 긴장감을 주는 듯한 견고한 나선 등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후에 칼더는 자신의 조각을 총칭하는 용어 ‘모빌’의 원천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이것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를 뒤샹에게 물었어. 그는 당장에 ‘모빌(mobile)’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내었지. 프랑스어에서는 이 용어가 움직이는 것이라는 뜻 외에 동인(motive)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더군.”
김병호의 조각과 장신구, ‘반복’과 유닛
김병호(1974-)는, 자신에게 끝없는 질문과 영감을 제공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 산업문명의 계획적이고 인공적인 환경’이라고 누차 밝혀 왔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판화와 예술공학(Art engineering)을 전공한 김병호는 철저히 계획된 설계와 정밀한 도면, 이를 구현 하는 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작업해 오고 있다.3) 다시 말해서 정밀한 설계도를 만들고 공장에 위탁해서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규격화된 모듈을 생산하도록 한 다음 그 모듈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제작한다. 은유적 형상을 창조하는 조각가의 능력을 통해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적인 조각 문법대신, 현대 기계문명의 매커니즘을 자신의 조형어법으로 전면화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그의 대부분의 조각에 모듈의 구성적인 ‘반복’과 관계적 질서라는 특성으로 수렴된다. 이 같은 김병호의 작업은 형식적인 차원에서 단순한 순서로 “하나 뒤에 또다른 하나가 뒤따르게 하는(one thing after another)” 구성을 주목했던 미니멀리스트들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 그러나 미니멀리스트들의 ‘반복’이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가(what the world's like)”를 밝혀내는 방식으로서의 논리적 유형을 표현하였다면, 김병호의 경우엔 현재 자신을 둘러싼 현대문명의 매커니즘을 주목하고 개별의 모듈(module)을 결합하여 유닛(unit)이 되는 과정 자체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예컨대, 2013년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 <정원>시리즈는 대량생산되는 제품과도 같이 동일한 형태가 반복적인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계화된 현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계획된 패턴의 대량생산 과정을 현대의 <정원>으로 설정한 것이다.
- “분업화된 공정으로 만들어진 오브제들이 조립이 되고 하나의 제품이 되는 것처럼 작업을 하는데, 그런 방법이 결국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좀 대변하는 방법이 아닐까, 대량 생산되는 그런 환경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서” -김병호
이 같은 김병호의 작업방식은 그가 최근에 제작하고 있는 장신구 작업 ‘Daily Celebrating’ 에도 적용되거나 집약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컨대, 작가는, 스스로 물질문명의 결정체라고 지칭하는 눈물 혹은 물방울 형태(직선과 결합된 타원구)의 모듈들이 결합된 수직 혹은 수평의 거대한 금속 작업 <정원>(2017-2023)을 반지와 목걸이, 그리고 귀걸리 등의 장신구로도 제작하였다. 그의 장신구들은 현대 물질문명에 다름 아닌 인공적인 <정원>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 혹은 두셋의 모듈을 잘라내어 그 개별/매일을 기념하고 반짝이며 기억하기를 희망한다. 장신구이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순간 거대한 모뉴멘트 조각 이상의 모뉴멘트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Two Hundred Ninety One
Drops of Tear
2013, aluminum, 100x40x230cm
Teardrop R/E18
2022, 925 silver ring
- 3 김병호와 문소영 대담, 『김병호: 더 매뉴얼』, 공간, 2023 참조
그는 그것을 제작했다
우리는 그간, 르네상스 이래 확정되어 온 '파인아트(fine-arts)VS공예(crafts)', '예술작품(objets)VS장신구(onement)' 사이의 선형적 위계에 대한 관습을 의심 없이 고수해 왔다.
칼더가 활발하게 활동 했던 20세기 초중반은,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 미스 반 데어 로헤(Mies Van Der rohe, 1886-1969),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 등의 동시대 건축가들의 기능 중심적 ‘탈 장식’, ‘반장식주의’가 강력하던 주도하던 시대였다. 세계 각국에서는 국제건축양식이라는 기능주의 건축물이 주를 이뤘고 신체나 일상을 꾸미는 장신구/장식(품)은 당시의 여성(female)의 사회적 신분만큼이나 극단적으로 배제될 부정적 존재로 여겨져 왔다. 즉 ‘현대성’과 등가였던 ‘시간’ 조차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당시의 여성은 시간을 확인하는 시계조차 장신구를 가장한 ‘시크릿 워치’를 착용해야 됐을 만큼 장신구는 여성과 함께 선형구조의 하위에 위치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시기 칼더는 견고하게 고정된 사물을 움직이는 오브제로, 움직이는 오브제를 신체에 착용하는 장신구로 제작하면서 시대가 요구해온 관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편, 김병호는 대량생산된 모듈을 구축하여 거대한 유닛의 조각과 유닛을 해체하여 다시 파편화된 모듈로 장신구를 제작하면서 오늘날 현대사회의 평평한 표면의 그리드적 구조를 가시화하고 있다.
이렇듯 엄청난 시간적 간격과 작업적 특성의 차이를 보이는 두 조각가의 장신구들은, 뒤샹이 그랬던 것처럼 “기술, 매체, 취향에 대한 오래된 미학적 질문들을(좋은 그림이냐? 나쁜 그림이냐?) 존재론적이고(예술이란 무엇이냐?), 인식론적이며(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제도적인 질문으로(누가 예술을 결정하는가?)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는 그것을 제작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한다.
장신구는 예술인가? 우리는 조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장신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누가 예술을 결정하는가?
- 4 19세기 초반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자신의 에세이 「장식과 범죄」(Ornament und Verbrechen, 1908)에서 장식에 대하여 격렬하게 비판했다. “문화의 진화는 일상용품에서 장식을 멀리하는 것”, “…우리는 장식을 극복했고, 고민 끝에 장식 안 함을 결정했어.”라고 했으며, “적을수록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독일 출신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헤의 기준에서도,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고 하면서 장식은 불필요한 부가적인 요소로 치부되었다. 사실, ‘장식’과 ‘장신구’ 문제는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구분하지 않았다.
- 5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알랭 브아, 벤자민 부클로, 배수희,
- 신정훈 등역, 『1900이후의 미술사』, 세미콜론, 2016, 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