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는 금속조형 작업을 통해 산업화된 현대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치밀하게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물질 환경과 제도적 시스템을 향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으며, 첨단기술과 전통적 노동이 결합된 결과물로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특히 금속이라는 재료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고 압축하면서, 우리가 인식하는 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강조한 '정원 이라는 개념에 주목해 본다. '정원'은 일반적으로 자연을 통제하고, 계획된 형태로 배치하여 인간의 이상적 공간을 만드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김병호의 '정원'은 단순히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넘어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적이고 구조화된 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는 '인공적인 자연'이자 사회적 규범, 법규, 제도, 산업화된 시스템과 같은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적 환경을 암시한다. 정원은 우리의 상식적인 이해를 넘어 예술체험 속에서 '욕망과 쾌의 장소' 이거나, 시적 경험과 여운이 머무는 사적인 장소로서 미적 상상을 자극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이번 <탐닉의 정원> 곳곳의 서사를 재해석하고 덧입히는데 관람자의 측면에서 유효하다. 또한 반짝이고-날 서고-맺히고-반사하며-증폭하는 특유의 조형성을 통해 작가가 심미적으로 관철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추구점을 예측해볼 수 있다.
필연적 생성의 장면들
김병호는 "화려한 물질문명의 혹"을 통해 인공적 세계의 안정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탐구한다. 직조처럼 수평과 수직, 직선과 평면의 구조는 작가에게는 이미 현대문명이 약속한 고요한 질서이자, 토대로서 읽힌다. 그러나 작가는 그로부터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킬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전성을 찾아내어 안정된 구조를 균열시키고, 이윽고 그 단면/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직선에 비해 이질적인 형상을 증식의 모티브로 보여주는 '혹'의 형상이기도 하고, 평면을 자른 단면 '두께'에 주목하여 사물의 본질, 인공적 세계의 본질에 대한 상징적 폭로를 감행한다.
'혹'은 일종의 바이러스, 안정된 인공세계에 변이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직선과 평면의 계획적이고 인공적인 환경에서의 변종인 것으로, 작가는 이를 '문명의 혹'이라 칭한다. 이 형상 자체는 맺혀지고 망울진 모양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개별 혹은 공동체의 삶에 편재한 허황된 욕망의 형상이자 강렬한 욕망의 대상으로 상징된다. 각 맺힘들(혹)이 서로를 반사하며 발하는 그 휘황찬란함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현혹한다. 이는 물질, 권력, 제도권 등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수동적으로 빠져드는 '탐닉'의 주된 서사를 완성한다.
한편 그로부터 해석의 확장적 국면이 움트는데, 확고한 구조와 모듈화된 세계 속에서 혼성적 변이로 생성되는 이 문명의 혹들이 욕망의 대상이자 형상으로 간주되는 것이라면, 특히 하나의 완결된 구조와 미적인 형상으로서 우리 사회의 구조를 조형적으로 담아내는 그의 작품들은, 인공적이면서도 필연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세계의 원리 원칙, 그 과정을 관조하도록 제3자에 의한 재해석의 과정을 강렬하게 유도한다. 모듈화된 세계의 부분이자 부산물인 문명의 혹들을 생성되고 가치를 부여하는 다양한 주체의 잠재성으로 여겨볼 수 있는 여지, 확고한 구조로 칭해지는 필연적 세계 속에서 마땅히 또한 필연적으로 발현되고 외화되는 '내재성'을 발견한 듯도 하다.
<수평정원>(2018)에서 이 혹들은 문명이 쌓아온 합리적 구조 속에서 비정형적으로 튀어나오는 요소로, 작가는 이를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욕망의 결정체로 해석한다. 이러한 돌기 혹은 혹과 같은 형상들은 <수평정원>, <수직정원>과 같은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지며, 이는 직선적이고 규격화된 질서 속에서도 분열과 비규칙적 요소가 여전히 존재함을 암시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증식하며 또한 자체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형상으로 이 세계의 유기적인 구조와 구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각 조형들, 맺힘의 형상인 혹들 사이 강렬한 금빛 반짝임과 동시적으로 비추고 반사하며 뿜어내는 '기운'은 탐닉을 넘어 이윽고 미적 감관(感官)을 열고 새로운 해석의 국면으로 관람자를 능동적으로 이끈다. 고정된 규칙 속에서도 세계는 이와 같은 형태로 생성되고 가득 차오르며 우리가 이 형태를 감각하는 순간 또 다른 내재원인, 다양한 욕망의 주체들로 서사화된 또 하나의 내적인 세계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보태게 되는 것이다.
<두 개의 충돌>(2024)에서는 작가가 물질의 표면을 어떻게 다루고 해석하는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각자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유광의 은빛 조형과 무광의 검은색 조형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되 만나지 못하고(교차 혹은 충돌) 축이 고정된 위치에서 동일한 속도로 운동을 감행한다. 이 움직임은 필연적 구조를 연상하게 한다. 반짝이는 은빛 조형으로 상징화되는 욕망의 대상과 아득함 자체를 본질로 삼는 모든 색을 품은 현(玄)색의 조형이 세계의 속성과 본질을 상징하며 한 공간에서 존재하되 닿기가 어려운 우리 인식의 한계에 대해 시각화하고 있다. 무광의 현(호)색 조형에는 은빛 조형의 반짝임이 결코 닿지 않는다.
작품 중에 <정원의 단면>(2024)이 있었는데 각각은 수평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각 면이 안정적인 구조로 놓여있기보다 사선으로 서로 괴고 이는 방식으로 여러 점이 배치되어 있다. 알루미늄을 기초로 무광의 검은 칠이 되어 있는 각 작업은 인공적 평면을 휘어 곡면을 생성하고, 앞면과 뒷면 사이 물질 및 세계의 실체로 상징되는 것으로 '두께'를 강조하여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는 자른 듯한 단면으로 알루미늄 본연의 색이 강조되어 그 효과를 강화하였다.
여기서 작가의 인공적 구조체, 세계를 관찰하는 데 있어 기하학적 질서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인공적 세계의 기초를 이루는 직각과 수직, 수평의 구조를 바탕으로 한 질서를 탐구하면서도, 그것을 교란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창작해 왔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서 종종 불안정한 각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안정적 구조 속에서 느끼는 우리 존재의 불안함과 긴장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며, 직선과 곡선, 평면과 돌출된 혹들이 충돌과 조화를 이루는 바를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이는 우리가 구축한 사회적 공간이 규범과 질서로 이뤄져 있되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반대급부의 것들이 항시 등장할 수 있음을 가능태로 내보이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김병호의 작업들은 냉소적이고 화려하면서도 일종의 토템적 요소까지도 상기하게 하는 등 강렬한 미적 자극을 제공한다. 개인과 사회,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서와 원칙, 그의 조형물은 모듈화된 부품들이 철저히 규격화된 방식으로 조립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이질적인 비정형의 혹이나 촉수가 나타나면서 현대사회에서 개별 인간들이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서로 맞물리고 충돌하고 발산하는 과정, 운동성을 추상적으로 시각화한 형상들이다. 구조적 한계와 틀로부터 필연적인 또 다른 '생성'의 가능성을 이어주는 흥미로운 서사들을 자연히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