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를 흐르는 물줄기들,
그리고 거대한 썰물의 자취는
원을 그리며 동쪽으로 흘러간다,
울트라마린의 기둥을 향해”
—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Marine」, Illuminations, 1886


김병호의 이번 《대칭 정원》에서 만난 ‘울트라마린’은 작가의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시그널이다. 랭보가 묘사한 ‘울트라마린의 기둥’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되는 바다 너머 낯선 지평, 초월적 세계와 심연을 지시하는 시적 이미지였던 것처럼 작가에게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지표인지도 모른다. 울트라마린(Ultramarine)은 라틴어 ultra mare, 즉 ‘바다 너머의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바다크샨 지역에서 채굴된 청금석(lapis lazuli)으로부터 추출된 심연의 푸른 빛 안료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성모 마리아의 로브를 칠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고, 금보다 값비쌌다고 한다. 《대칭 정원》에 이 같은 초월적 차원과 물질적 기원을 상기시키는 청금석의 선명한 색과 빛의 조각이 더해짐으로써 육중하거나 날렵한 금속 시스템 작업은 한층 생기를 발한다. 이 전시는 차가운 금속, 정밀한 대칭, 반복되는 모듈, 그리고 산업적 질서 속에서 색으로 감각의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즉 지난 20여 년간 구축해온 기계적 조형의 언어를 집약하고, 산업적 시스템을 매개로 함과 동시에 색을 통한 예술의 감각적 가능성을 탐구 중이다.

작가는 그간 금속의 수직과 수평, 기하학적 형태와 구조, 선적 반복과 형상 집적 등 인공으로 다듬어진 다양한 자신만의 정원을 조각해왔다. 그의 추상 조각들은 동일한 형태의 리드미컬한 운율뿐 아니라, 장치에 의한 움직임이나, 사운드 결합을 통해 미니멀하거나 구조적인 오브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깊은 바다의 청색이 긴장과 균형의 호흡을 만들며, 기계의 미적 순간과 만나게 한다. 그의 작업은 반복과 대칭의 조형적 형태와 정보와 물질의 재현에 기반한 기계적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지만, 보이는 대상을 넘어선 작가의 세계 이해가 투영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계적 정동 또는 시스템의 감각을 터칭하는 경험에 이르게 한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이 어떻게 기계적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투영하는 조형 원리를 갖게 되었는지, 또한 그의 이런 추상의 감각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지 탐색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통해 그의 예술을 추적하고자 한다. 첫째, 작가는 어떻게 금속의 추상 감각과 기계 언어의 반복적 조형 원리에 도달하는지, 둘째, 그의 예술이 유일무이한 창조의 결과가 아닌 대량생산의 시스템과 같은 과정의 의미를 묻는 것으로 그의 작업에 대한 독해를 시작한다.


추상 감각과 기계 언어의 조형 구조

김병호는 200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을 형성한 세대에 속한다. 그의 조각은 감정의 표현이나 물질의 직조가 아니라, 형식의 논리와 질서, 구조의 사유를 중시하는 구축적 조각(constructive sculpture)의 계보 위에 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초기 판화로부터 시작하여 조각으로 작업을 확장하였다. 그의 작업 〈이십육개의 선들 The Twenty-six Lines〉(1998)은 예술의 시작점이자 추상 감각과 반복 표현의 지향적 세계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된 이 평면 작업은 하나의 점으로 집중하는 사선들이 좌우로 당겨지듯 나뉘어 평면을 분할하고 있다. 좌우의 대칭, 상하의 비대칭으로 강한 역동성의 화면에도 불구하고 시각은 흐트러짐 없다. 긴장과 균형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평평하고 팽팽한 감각을 리얼하게 시전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작업이 그의 모든 조각이나 설치의 긴장, 균형, (비)대칭의 조형적 기원이자 기준일 수도 있다. 이 판화 작업에서 그의 직선, 사선, 선들의 집적, 그리고 이들의 긴장과 균형이 곧 추상이고 조각의 모체임이 보다 잘 드러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산업화된 도시 풍경 속에서 성장한 그는 산업 구조물과 철골의 리듬, 금속의 표면과 광택을 자연스럽게 시각 경험으로 체화했다. 이것이 자연의 질료보다는 산업적 물질이 가진 시각적 리듬과 질서에 기반한 작업으로 이끌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므로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알루미늄은 단지 재료가 아니라, 그의 감각 체계와 사유의 언어를 구성하는 ‘조형적 어휘’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작업 세계에서 수직(verticality)과 수평(horizontality)은 핵심적인 조형의 구조이다. 〈정원의 단면〉, 〈수평 정원〉, 〈수직 정원〉 등의 시리즈에서 보이듯, 그는 자연의 유기적 이미지 대신 기하학적 축을 따라 모듈을 반복·배열하며, 정원을 인간이 조직한 인공적 질서로 제시한다.

수평성은 지평선의 확산과 반복을 환기하고, 수직성은 기둥의 긴장과 상승을 드러낸다. 두 축은 서로의 대비 속에서 균형을 형성하며, 이는 정원의 이중성—자연과 인공, 개방과 구획—을 압축한다. 김병호의 정원은 결국 그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욕망이 설계한 풍경”(인터뷰)으로,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은유다. 예컨대 〈수평 정원 Horizontal Garden〉(2018, Brass)는 이러한 형식적 사유의 전형이다. 금속 선과 모듈이 반복적으로 배열된 이 작품은 빛과 그림자의 각도에 따라 다른 형태로 지각되며, 관람자의 시점에 따라 구조적 질서가 달라지는 감각의 변주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수직 정원 Vertical Gardens〉(36 Vertical Gardens – B24C12, 48 Vertical Gardens – B36C12, 54 Vertical Gardens – B42C12 등)(2024) 시리즈 역시 수직적 구조 아래 둥근 열매들이 기둥에 매달리듯 연속적으로 배열되는 형태를 취한다. 수직, 수평, 원형의 구조는 반복되고 개별 작업의 특성에 따라 수적 받침이 결정된다. 이는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말한 “반복은 차이의 조건이며, 차이는 반복 속에 각인된다”는 개념과 매우 잘 맞는다. 김병호의 선적, 기하학적 구조는 동일성의 축적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차이를 산출하는 감각적 생성의 장이다.

김병호의 조각은 언제나 차갑고 매끈한 금속 표면을 제시하곤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으로 대표되는 산업적 재료는 시스테미컬하고 비인격적인 감각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물질적 선택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관여된 것이다. 그는 조각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사고한다. 사회가 작동하는 시스템의 그것처럼 조각 역시 전체 구조를 이루는 원리와 조형적 단위를 집약한 추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설계 도면을 중심으로 엔지니어와 협업으로 제작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바로 산업적 시스템, 생산 체계의 맥락과 유사하다. 그의 오브제는 그러한 이유로 원재료와 제작 시스템 속에서 물질과 구조의 교차를 통해 미적 산물로 거듭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거의 모든 추상 조각은 중립적 혹은 기하학적 조형의 특징을 보이는데, 하나의 단위가 반복되며 균질하게 대칭을 이루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그의 조각은 기하학적 모듈의 반복과 대칭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단위가 설계 도면에 의해 배열되고, 전체적으로 반복적인 패턴과 구조로 결과물을 산출한다. 이러한 일체의 과정은 미니멀리즘의 질서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산업적 생산 방식에서 제작의 레퍼런스를 찾는 이유에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의 기하학적 조형은 수학적 도식이 아니라, 생산성의 원리처럼 시간과 물질의 함수로서 작가만의 기계적 산출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전통적인 조각가처럼 재료를 깎거나 다듬지 않는다. 대신 설계도면을 그려 엔지니어와 협업하며, 이를 통해 조각의 제작 과정을 산업적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킨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설계 도면은 엔지니어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 의도를 드러낸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예술을 ‘창작’의 행위로 보는 관념을 넘어, 조각을 하나의 프로세스, 즉 시스템으로 재정의하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시스템은 작업의 생산 관계 안에서의 유의미한 질서로 요약되는데, 그는 이러한 관계가 사회 내의 모든 장면들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그런 까닭에 그는 추상 조각을 만들지만, 사실상 가장 현실적인 상황과 구조를 간추린다는 점에서 대단히 리얼리스틱한 대목이 없지 않다.

그의 작업은 예술의 제도적 틀 안에서 전시되지만, 그 제작 과정과 조형 언어는 철저히 산업 시스템의 원리를 따른다. 그의 조각은 도면에서 출발하여, 절단·연마·조립의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이 구조는 미술사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말한 “비인격적(materially reductive)이고 시스템적인 조각”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그의 〈130 Teardrops〉(2022, brass)는 이러한 산업적 질서 속에서 감정이 어떻게 구조로 변환되는가를 탐구한 작업이다. 세워진 삼각형의 전체 구조에서 눈물방울 130개는 평평하게 금속 구조물로 눈물의 궤적을 연상시키는데, 그 형상은 감정의 외연이 아니라 정확한 비례와 조립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즉 ‘눈물’은 인간적 정동의 은유이지만, 그것이 금속의 구조로 변할 때, 감정은 기계적 질서 속에서 재생산된다. 이때 김병호의 조각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이 시스템 속에서 다시 생성되는 구조로 전환된 셈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 원리는 반복이다. 들뢰즈는 반복을 “감각적인 것을 일련의 차이 속으로 끌어들여 감각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진동(vibration)”이라 말한다. 김병호의 조각에서 이 진동은 물질의 표면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 공간과 시간의 변주 속에서 발생한다. 〈눈물〉의 금속 모듈이 LED와 음향을 매개로 감각적 떨림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의 조각은 산업 구조 속에서 감각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기계적 유기체가 된다. 이를 김병호의 구조적 기계 미학으로 규정한다면, 20세기 초 러시아 구성주의(Russian Constructivism)의 전통과 견주어 살펴볼 수 있다.

분명 그의 금속, 설계 도면, 모듈화, 산업적 제작 시스템이라는 방법론은 구조적 사고와 공간 지향성에서 구성주의와 접점이 있다. 그러나 구성주의가 기능성과 사회적 생산을 지향했다면, 김병호는 동일한 기계적 언어를 비기능적이고 추상적인 조형 실험으로 전환한다. 타틀린, 로드첸코, 리시츠키 등은 기계적 구조와 공업 재료를 통해 예술을 사회적 기능으로 확장하려 했고, 예술을 “생산주의(productivism)”로 전환하여 건축, 디자인, 산업과 긴밀히 결합시켰다. 한편 산업적 시스템을 통해 제작을 이어온 작가의 시도는 러시아 구성주의가 추구했던 기계와 예술의 결합을 연상시키지만, 그 방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타틀린(Vladimir Tatlin)과 리시츠키(El Lissitzky)가 기계를 사회적 생산성과 진보의 상징으로 여겼다면, 김병호는 기계적 질서를 감각의 생성과 미학적 사유의 매개체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산업 시스템을 기능이 아닌 감각의 언어로 사용한다. 그의 <두 개의 충돌 Two Collisions>(2024, Stainless steel, vacuum plating, patination, DC motor)은 이러한 개념이 가장 응축된 작품이다. 좌우 대칭의 금속 구조물이 모터에 의해 미세하게 움직이며, 빛의 방향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균형과 불균형이 반복된다. 그는 대칭의 완벽함을 통해 질서를 상징하면서도, 그 질서가 항상 미세한 차이에 의해 흔들린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때 대칭은 정적인 균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균형(dynamic symmetry) 이며, 감각의 긴장을 유지하는 생성적 질서로 작동한다.



정동, 기계적 질서와 청금석 눈물
금속과 빛, 구조와 질서, 그리고 감정과 인공의 긴장을 탐구해 온 조각적 여정은 여전히 많은 담론이 넘나든다. 그의 조각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설계와 제작, 분업과 조립이라는 현대적 생산 시스템을 내장한 구조적 장치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조각 세계의 지향해온 구조적 시스템을 집약하면서도 새롭게 선보이는 〈대칭 정원〉(2025) 시리즈를 통해 색으로 긴장의 방점을 더한다.

울트라마린의 강렬한 색감이 시선을 강탈하는 이 〈대칭 정원〉(2025) 시리즈는 작가가 ‘눈물’이라 칭하는 작업들의 연장선에 있다. 작가는 원형의 눈물방울과 이를 지지하는 틀이 연속적인 리듬을 만들며 투명한 구조, 투명한 시스템의 시각적 모듈을 생성한다. 이 작업 역시 시스템 사회의 반복적 패턴으로부터 각인된 것이다. 눈물이라는 정서적 기표를 산업적 모듈로 재현하는 순간, 이 작업은 감성과 산업, 자연과 기계가 교차하며, 이내 ‘청금석 눈물’에 이른다. 이는 인간적 정동과 기계적 질서가 동시에 작동하는, 새로운 추상 조각의 층위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호의 조각은 단지 산업 미학의 시각적 변형이 아니라,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재사유하게 하는 감각의 실험의 장이다. 기계가 만든 조형이 감각이나 정서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그의 금속 조각은 감정의 결여가 아니라, 감각의 정제이며, 무표정한 구조 안에서 감성의 미세한 진동을 일으킨다. 〈대칭 정원〉의 정교한 균형, 〈눈물〉의 구조적 감정, 〈수평 정원〉의 리드미컬한 반복은 모두 감각의 질서화(sensory ordering)라는 동일한 미학적 원리에 수렴한다. 그는 기술과 시스템의 언어를 빌려, 감각의 존재론을 다시 쓴다. 그의 차가운 금속 구조는 단순한 공업 오브제가 아니라, 기계적 질서 속에서 감각이 생성되는 현상학적 장(場)이다. 랭보가 ‘울트라마린의 기둥들’이라 불렀던 그 푸른빛처럼, 김병호의 조각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감각의 깊이를 드러낸다. 그의 금속적 대칭과 반복은 차가운 표면 아래에 숨겨진, 감정의 울트라마린이다.

김병호의 조각 세계를 응축한 《대칭 정원》은 산업적 구조와 기계적 질서를 통해 감각적 변주를 산출하는 장치적 풍경이다. 청금석 눈물은 감정과 신성의 기표를 불러오지만, 그것이 금속 모듈과 기계 시스템으로 재현될 때, 우리는 새로운 정원—자연과 인공, 기계와 감각이 교차하는 풍경—에 들어서게 된다.

2025.09.30
박남희 (미술비평,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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