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지면을 통해서나마 전시의 동선을 따라가며 작품을 살펴보자. 전시장은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되고, ‘정원(Garden)’으로부터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정원은 집의 입구나 특정한 건축물의 주변에 위치한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고 가공된 형식이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문화의 독자적인 정체성과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는 2013 년 이후부터 작가의 작업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서인데, 그는 정원을 자연적인 것과 조작된 것이 뒤섞인 혼종으로 본다. 즉 주어진 환경이 인위적 계획과 침입에 의해서 능동적으로 변화할 때 정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가꾸어 놓은 정원은 작가만의 기하학적 논리를 따라 계획적으로 구축되었다.
정원을 지나 등장하는 장면은 또 한 번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인공물의 유비에 관한 것이다. 계절과 기후의 변화에 따라 생물은 소리 없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 순환은 소란스럽지 않으나 웅장하고 숭고한 것이며, 인간은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파편적으로만 감지할 뿐이다. 문명의 순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역사가 공시적/통시적 인식의 영역을 초월하여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 사이를 흐르고 번져가는 형국을 꽃의 수분과 씨앗이 퍼져가는 과정과 겹쳐본다. 전시의 두 번째 장인 ‘수집된 장면들(Collected Scenes)’에 설치된
세 번째 전시장을 들어서면 열 아홉개의 길쭉하고 뾰족한 형상의 뒷모습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은 은은한 먹의 향을 풍기는 반짝이는 물 위에 조용히 떠있다. 신체 크기를 훌쩍 넘는
신들의 자리를 지나 마지막 방에 이르면 ‘기념비화(Monumentality)’에 관한 화두가 등장한다. 무엇인가를 기리고 기록하기 위해서는 의미를 담는 형식이 필요한 데, 현실에서는 주로 상징적인 대용물을 통해 공통된 기억이 공유되고 확산된다. 어두운 방에 속한 조각들은 대부분 앞선 다른 작업들이 발산했던 빛을 완전히 흡수하거나 수렴한 듯 새까맣게 뒤덮인 표면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려는 듯 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부수적인 미사여구를 내려놓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대상의 본질적인 얼개를 더 또렷하게 마주하게끔 한다. 구멍이 뚫린 공백(void)처럼 느껴지는 검은 존재들은 가장 근원적인 형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비물질/물질, 입제/평면, 음/양 사이의 위치를 점유하며 생경한 감각들을 일깨운다. 결국 작가는 이 자리를 빌어 현대 산업 사회 속 원소들을 다수와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기하학적 양태의 기념비로서 제시하고 있다. 전시의 마지막 광경은 곧 전시장 가장 처음의 풍경, 빛을 뿜어내던 태초의 것들과 수미상관을 이루며 양면적인 것을 포용하고 기묘한 균형을 끌어안는 작가 김병호만의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절정/정점(Climax)’은 보통 사물이 가장 높은 지점에 다다랐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긴장감을 암시하거나 측정 가능한 수치를 넘어서는 쾌의 순간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가 가용하는 조형 언어의 정점에서, 우리는 충돌과 이접의 연쇄 속에서도 결코 멈춤이 없이 영위되는 현대 문명과 인간 사이의 보편의 관계를 또렷하게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문명이 사고의 틀을 세우는 동력이라고 한다면, 현실의 미세한 입자들이 김병호라는 치밀한 힘의 필터를 거쳐 누군가의 생각에 울림을 만들어내는 찰나는 작은 문명의 탄생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