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문명사회로 인해 세워진 규격과 부피, 면적과 같은 수치와 수치화 할 수 없는 무형의 거리 와 시선을 두 작가는 작품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나타낸다. 김병호 작가는 가장 물질적인 매체인 철을 철저히 가공해 환상을 현실에 표현한다. 꺾일 듯 휘어진 얇은 철로 된 작품에서부터 보석만큼 찬란하게 빛을 반사하는 조형물까지 김병호 작가는 매체를 활용하는 기술 자체에서 드러 난 문명 기술의 발전과 기술로 얻어진 결과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이 신비로 운 것은 작품의 심미적 형상 너머에 작품 제작 과정과 매체의 본질을 통한 인간의 성찰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철을 이용한 대형 작품을 현실로 구현하기까지는 많은 전문가와의 협업이 필요 하다. 작가의 천재성이 아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사람의 협업이 필수적인 그의 작품은 작 업의 과정 자체가 인간 혼자로는 할 수 없는 사회관계를 보여준다. 또한 변하지 않는 경도를 가진 철을 활용함으로써 철의 고유성을 통한 인간의 나약함을 작품 이면에 포함한다.
반면 이정배 작가는 도시화된 공간에서 발견하게 되는 자연의 단면과 다른 두 사회가 만들어낸 사 이 공간을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높은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 방파제 넘어 들이치는 파 도, 눈으로 가늠조차 안 되는 산맥의 단면에는 작가만의 조형과 선이 담긴다. 이는 동양화 특유의 묵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선과 면의 단순한 획으로 화면에 정착시키는 기법의 현대 적 표현이다. 그는 눈으로 담은 자연의 풍경을 동양화의 여백의 미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의 획으로 서 부조를 흰 벽면에 부착해 표현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보이는 단면의 부조뿐만 아니라 생략된 드넓은 자연의 여백의 미를 상상하게 한다. 이번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또 한가지 인상적인 작업 방식은 바로 고행이다. 동양화에서 강조하는 정신 중에 하나는 고행을 통한 수행이다. 레진이 아닌 나무를 제단하고 건조하고, 휨을 표현하기 위한 시간의 과정들은 맹물을 먹물로 만들어 내는 시간 이 담긴 수묵을 표현하는 과정과 같다. 완성된 조형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수행의 과정에서 나타 내는 나무의 고유성은 김병호 작가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사용 매체의 고유성을 통한 인간됨을 되 돌아보게 한다.
발달된 문명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무한한 자연에 대한 추앙도, 배척도 할 수 없이 오히려 제도 화된 틀 안에서 제한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동일하게 문명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과 가치 역시 무조건적인 수용도 배격도 할 수 없다. 두 작가는 이번 집이라는 전시공간에서 문명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각자의 시선으로 표현한다, 두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매체의 경 도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두 작가의 작업은 각 개인의 다름만큼이나 다양성을 띠지만 ‘삶의 태도’라 는 기준으로의 공통성을 갖고 집의 공간에 스며든다.